2009/07/23 23:21
인사이트
무슨 일이든지 성공을 하기 위한 기초관건은 "사람"에 있다.
나 혼자서 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사는 방법은 두 가지에서 그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생산자이고 하나는 소비자로 사는 방법이다.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면 생산하는 놈은 소비 안하냐고 반문하는데, 폭을 좀 넓게 잡고 하는 이야기이므로 흑 백을 가리듯 따지지 않고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소비자로 살아가든 생산자로 살아가든 사람이 두 명 이상이 되면 조직이 구성된 것이다. (가족은 일단 제외하고.)
때문에 "사람"을 잘 볼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잘 얻어야 지혜롭게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똑똑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해도 "사람"을 잘 만나면 성공하고, 잘 못 만나면 실패한 인생이다.
오죽하면 지기(知己) 셋 만 있으면 천하(天下)를 도모한다고 했겠나?
인존(人尊)의 진리원전 증산도(甑山道) 도전(道典)을 읽으면서, 유소년 시절의 증산상제님을 바라보며 사람을 보는 법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서, 또 지난날 군대생활과 전역이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작은 경험으로 정리를 해봤다.
먼저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의 눈에서 맑은 기운이 느껴져야 한다.
그리고 음성 또한 맑고, 발음이 정확하고 운치가 있어야 한다.
몸가짐은 바르고 말을 할 때 입 모양이 바르고 균형이 있어야 한다.
특히 뒷 모습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이 깊고,
말하는 틀과 글 쓰는 폭이 규모있고 큰 사람이 좋다.
또한 하나를 배우면 열을 응용하고, 활달한 움직임과 천연의 미소를 간직한 사람이 좋다.
공연스레 없으면서 있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 못났으면서 잘난 척 하는 삼척동자같은 사람은 일단 보류다.
또한 빈 수레가 요란스럽다고, 하는 것도 없으면서 뻥만 치고 말로 때우려는 사람 역시 일단 보류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느끼고 깨달으면서 동시에 나의 꼬라지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놈인가?
이야기 하자면 속이 쓰리다. ^^
앞으로 많은 세월 살아가야 하는데, 바르게 살려고 무지 무지 애를 쓰고 있다.
과학수사의 한 분야로 프로파일링(Profiling)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 그대로 언제 태어났니? 장남이니? 차남이니? 남자니? 여자니? 머리 색깔은 모야? ~~~~ 하면서 주저리 주저리 대는 것을 데이터베이스로 눌러 담는다. 어떤 넘이 사고를 치면, 아무리 잘 나가는 명탐정, 명수사관이라고 해도 어케 첨 본넘을 알것나? 감으로 때려잡는다면 맞아도, 그 사람을 안다면 뻥이다. 사람을 알려면 그 조상대대로 흘러온 기운부터 알아야 하는데, 사람을 아는게 그리 쉽지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잘 살려고 하는 세상이 열리는 때라서, 자꾸 남 뒤를 캐고 또 흠집잡기 위해서 데이터 뽑으면 그넘도 죽고, 캐고 댕기는 넘도 뒤질 수 밖에 없는 때다. 왜냐면 자연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사람보는 눈 이야기 하면서 왜 쓰벌~ 프로퐐링이니 나발이니 하냐고, 금산사 사천왕 처럼 무서운 눈알 부라리고 덤벼들 수도 있을텐데, 내 말은 서로 잘 살려고 하는 세상이니께 사람보는 여러가지 좋은 기법들이, "사람 때려잡는데 쓰이지 않고", "좋은 사람을 잘 선별해서 적재적소에 쓰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던간에 나는 정치도 경제도 잘 모르지만, 이 세상 잘 살고 가야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잘 살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볼줄 알아야, 사람을 잘 쓰게 된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려면 사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경험하며 쓴 맛도, 단 맛도 보는 과정을 별 수 없이 거치기는 해야 한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항상 옛사람의 지혜를 빌려서 더 지혜롭게 잘 나가지 않는가?
불경 속 한 구절에서 배우고, 성경 속 한 구절에서 배우고, 유가의 경전 속 한 구절에서 지혜를 배워 활용을 해왔는데 "사람보는 눈은 깊이있게 열어주지를 못했다." 그런데 인존문화를 열어주신 가을개벽장 증산상제님의 이야기, 도전(道典)을 읽다보니 사람은 이렇게 보여지는구나 하는게 조금 깨달아졌다는 것이다.
진짜 한번 성공을 해보고 싶다면 증산도 道典 일독(一讀)을 권한다.
2009.07.23.木 huey
나 혼자서 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사는 방법은 두 가지에서 그친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생산자이고 하나는 소비자로 사는 방법이다.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면 생산하는 놈은 소비 안하냐고 반문하는데, 폭을 좀 넓게 잡고 하는 이야기이므로 흑 백을 가리듯 따지지 않고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소비자로 살아가든 생산자로 살아가든 사람이 두 명 이상이 되면 조직이 구성된 것이다. (가족은 일단 제외하고.)
때문에 "사람"을 잘 볼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잘 얻어야 지혜롭게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똑똑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해도 "사람"을 잘 만나면 성공하고, 잘 못 만나면 실패한 인생이다.
오죽하면 지기(知己) 셋 만 있으면 천하(天下)를 도모한다고 했겠나?
인존(人尊)의 진리원전 증산도(甑山道) 도전(道典)을 읽으면서, 유소년 시절의 증산상제님을 바라보며 사람을 보는 법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서, 또 지난날 군대생활과 전역이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작은 경험으로 정리를 해봤다.
먼저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의 눈에서 맑은 기운이 느껴져야 한다.
그리고 음성 또한 맑고, 발음이 정확하고 운치가 있어야 한다.
몸가짐은 바르고 말을 할 때 입 모양이 바르고 균형이 있어야 한다.
특히 뒷 모습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이 깊고,
말하는 틀과 글 쓰는 폭이 규모있고 큰 사람이 좋다.
또한 하나를 배우면 열을 응용하고, 활달한 움직임과 천연의 미소를 간직한 사람이 좋다.
공연스레 없으면서 있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 못났으면서 잘난 척 하는 삼척동자같은 사람은 일단 보류다.
또한 빈 수레가 요란스럽다고, 하는 것도 없으면서 뻥만 치고 말로 때우려는 사람 역시 일단 보류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느끼고 깨달으면서 동시에 나의 꼬라지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놈인가?
이야기 하자면 속이 쓰리다. ^^
앞으로 많은 세월 살아가야 하는데, 바르게 살려고 무지 무지 애를 쓰고 있다.
과학수사의 한 분야로 프로파일링(Profiling)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 그대로 언제 태어났니? 장남이니? 차남이니? 남자니? 여자니? 머리 색깔은 모야? ~~~~ 하면서 주저리 주저리 대는 것을 데이터베이스로 눌러 담는다. 어떤 넘이 사고를 치면, 아무리 잘 나가는 명탐정, 명수사관이라고 해도 어케 첨 본넘을 알것나? 감으로 때려잡는다면 맞아도, 그 사람을 안다면 뻥이다. 사람을 알려면 그 조상대대로 흘러온 기운부터 알아야 하는데, 사람을 아는게 그리 쉽지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잘 살려고 하는 세상이 열리는 때라서, 자꾸 남 뒤를 캐고 또 흠집잡기 위해서 데이터 뽑으면 그넘도 죽고, 캐고 댕기는 넘도 뒤질 수 밖에 없는 때다. 왜냐면 자연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이다.
사람보는 눈 이야기 하면서 왜 쓰벌~ 프로퐐링이니 나발이니 하냐고, 금산사 사천왕 처럼 무서운 눈알 부라리고 덤벼들 수도 있을텐데, 내 말은 서로 잘 살려고 하는 세상이니께 사람보는 여러가지 좋은 기법들이, "사람 때려잡는데 쓰이지 않고", "좋은 사람을 잘 선별해서 적재적소에 쓰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던간에 나는 정치도 경제도 잘 모르지만, 이 세상 잘 살고 가야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잘 살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볼줄 알아야, 사람을 잘 쓰게 된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려면 사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경험하며 쓴 맛도, 단 맛도 보는 과정을 별 수 없이 거치기는 해야 한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항상 옛사람의 지혜를 빌려서 더 지혜롭게 잘 나가지 않는가?
불경 속 한 구절에서 배우고, 성경 속 한 구절에서 배우고, 유가의 경전 속 한 구절에서 지혜를 배워 활용을 해왔는데 "사람보는 눈은 깊이있게 열어주지를 못했다." 그런데 인존문화를 열어주신 가을개벽장 증산상제님의 이야기, 도전(道典)을 읽다보니 사람은 이렇게 보여지는구나 하는게 조금 깨달아졌다는 것이다.
진짜 한번 성공을 해보고 싶다면 증산도 道典 일독(一讀)을 권한다.
2009.07.23.木 huey

